첫 번째로, 언제 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가족들보다 먼저 일어나 뛰어도 좋지만, 느긋하게 일어나 아기에게 우유를 주고 다른 가족에게 아기를 맡기고 9~10시, 아니면 오후 늦게 나가도 똑같은 러닝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는 제가 늦게 일어나서 9시쯤에 나가서 뛰었는데요. 이른 아침의 조용함과 조금 더 크리스피한 공기의 느낌은 없지만 또 조금 늦게 나가니 도시가 활기차더군요. 이 날은 특별히 반대방향으로 뛰었는데 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 뛰는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차선을 다 이용할 정도였어요. 마라톤 뛰는 것처럼 함께 했어요. 무엇을 하는 타이밍은 이 때도, 저 때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늦으면 늦는 대로 이르면 이른 대로 좋은 게 있었습니다. 그저 어느 상황에서도 내가 뛰겠다는 그 의지가 중요한 거니까요.
두 번째, 목표 도착지에는 언젠간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뛰다 보면 언제 도착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같은 거리여도 더 멀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고 목적지에 도착을 합니다. 조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도착은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하고 그 힘듦-회유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나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다 보면 거의 다 와있죠. 처음에 시작할 때나 뛰는 중간에는 목적지가 상당히 멀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의 속도로 도착은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 번째,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뛰는 것을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저는 컨디션에 따라 조금 더 빨리 뛰기도 하고 느리게 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나의 룰이 있는데 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방과 후 수업으로 track을 뛰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게 절대 뛰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4km 동안 최대한 걷지 않고 뛰어요. 어떤 때는 뛰는 시늉만 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그들은 상관도 하지 않고요). 누군가에게 내가 뛰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이 뛰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누구를 위해 보여주는 것도 나의 Running 이니까요. 나의 속도로 내 컨디션에 맞게 그날의 러닝을 끝내면 만족도도 훨씬 높았어요.
네 번째, 목적 도착지에 가는 그 과정이 가치 있는 것.
목적지가 있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뛰는 방향이 정해지니까요. 그러나 그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 러닝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적지에 가기 위해 내가 흘리는 땀방울, 내가 듣는 음악, 내가 뛰는 동안 한 생각들, 마주친 사람들과의 인사 들이 제 러닝에 즐거움과 의미를 줍니다. 이 과정이 재밌으면 4km도 훌쩍 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주에 러닝을 하던 도중 신호등이 있어서 잠시 섰는데 그곳에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 뛰다가 헛밟아서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진 않았는데 좀 창피하더군요. 그때 씩씩한 척 얼굴을 들었는데 신호등 반대편에 있던 남자 러너(runner)가 제게 손 제스처로 괜찮냐는 표시를 했어요.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순간 창피함도 없어지고 마음이 찡했어요. 그래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줬어요. ok 사인과 함께요. 이날 4km를 마치고 집에 가는 그 기쁨보다도 모르는 사람의 'are you okay'가 훨씬 더 큰 감동이었어요.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서 가끔은 외롭지만, 항상 그곳에는 나를 보고 내가 힘들 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것 같아요. 목적지에 가는 과정에서 기대하지 않은 행복과 감사함을 마주칩니다.
다섯 번째, 한 번이라도 뛰어서 다행이다.
한번 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하지만, 생각보다 영향이 큽니다. 어쩌면 뛰는 것도 운전같이 한번 해놓으면 몸이 그걸 기억하는 것 같아요. 1주일 전에 뛰었지만 이전에 뛴 만큼은 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주 1회라도 하는 것에 감사했어요. 아기를 봐주고 있는 가족들, 이탈리아의 멋진 풍경, 테라스를 예쁘게 꾸며놓아서 눈호강을 시켜주는 부지런한 집주인들. 모두 감사함을 느꼈어요. 언젠가 여유가 되면 두 번도 세 번도 뛰는 날이 오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어요. 러닝을 통해 운동을 미용목적이 아닌 나의 정신과 신체를 위해 수련하는 것으로 재 인식하게 되었고 공복 러닝으로 식욕도 좀 줄고 뱃살도 그날은 뱃가죽같이 착 달라붙고요 (그러나 그다음 날부터 먹기 시작하면 배는 당연히 다시 나옵니다). 헉헉 거릴 정도로 한번 뛰면 엔도르핀이 도는지 너무 상쾌하고 행복해요.
러닝으로 더욱더 나답게, 나다운 속도로, 나만의 목표를 향해 그 과정을 즐기며 걸어가 보려 합니다. 가끔은 많이 뒤처지는 것 같고 언제가 이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4km 동안 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가는 길에서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어떤 한자리에 좀 오래 있더라도 그 만한 이유와 배움이 있을 거라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keep running = keep learn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