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에 피렌체에 가서 그 아름다운 건축물과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고도 '우와' 에서만 끝났던 것이 내심 찔렸을까. 나는 관광지에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결론을 지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던 것 같다. 피렌체에 대해 배경지식을 쌓을 시간도 없고 아이가 많고 내 일을 하는 나에겐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고 핑계를 대봤지만 매번 여행이 이렇게 되는 것은 싫었다. 이탈리아에서 어디 갈 때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그냥 일상만 하고 온다? 가서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장을 봐서 에어비앤비에서 밥을 해 먹고 커피를 마시고... 물론 이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고 아이가 많은 집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겠지만 요즘 들어 내 안의 꿈틀거리는 탐험가적 성향이 불쑥 불쑥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탐험가적 성향은 항상 내 삶에서 더 나은 것을 갈구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작정 미국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한 결정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내가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그 문화와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나온 결정은 이 나라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해야 한다고 것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관과 시각을 장착하는 거니까. 어쩌면 내가 이 나라의 언어를 하면 조금은 더 삶을 즐기고 여유 있는 자세를 가질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 나이에 언어를 혼자서 독학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영어를 쓰며 살아도 그럭저럭 지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였다. 간절함이 없어진 것이다!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것은 나의 to-do-list의 저만치 아래에 있었고 집에 아기와 주로 있는 나는 이탈리아어 한번 듣지도 쓰지도 않고 지내는 날이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이프살롱에서 해리포터 원서 전권을 완독하신 재환님의 피드에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파우스트'를 읽는 고전 독서모임을 인북에서 한다는 피드를 보았다. 그 순간 '이거다!' 했다. 더 현대적인 책들이 있겠지만 (더 와닿을 수 있는) 이거여만 했다. 지금도 할 일이 많지만 두 번의 고민은 필요 없었다. 혼자는 못 읽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그 자리에서 신청을 했다. 그렇게 하고 국문으로 e-book을 구매해서 읽는데 시작부터 자꾸 눈물이 났다. 슬픈 내용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민음사의 <이탈리아 기행> 리뉴얼본 편집을 하신 편집자 이수은 님의 서문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괴테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게 문학의 힘일까. 1700년대 사람인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21세기의 한국인 여성인 나를 동일시하다니. 서문에서만 내가 크게 공감한 구절들을 적어본다.
-
그는 오랫동안 이날을 꿈꾸며 견뎠고, 그래서 여행 초반에는 그가 느끼는 해방감이 더욱 짜릿하게 다가온다. 그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그토록 바랐던 것일까.
-
10여 년의 공직 생활 동안 괴테는 훌륭한 관료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작가로서는 자기 작품에 집중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
괴테가 이탈리아로 떠난 가장 시급한 이유는 온전히 원고 마감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생활세계로부터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
관례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가해지는 신분사회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것은 도피도 도주도 아닌, 오래 응축되어 있던 예술가적 자아의 폭발이었다.
-
평생에 걸쳐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린 탓에 태도나 견해에 있어 보수화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
"불쌍한 북방인인 나의 눈에 눈물 같은 것이 맺혔다."
"불쌍한 북방인인 나의 눈에 눈물 같은 것이 맺혔다" 부분에서도 나도 눈물이 맺혔다 (아직 편집자의 서문만 읽은 상태에서도). 마차 안에서 나폴리의 한 소년의 흥겨운 노래가 음울하고 사색적인 독일인이었던 괴테에게 감당하기 힘든 소음이었기에 괴테가 그 소년에게 시끄럽다고 야단치는 장면이었다. 그 소년은 놀라서 노래를 뚝 그치고 얼마 동안 가만히 있더니 괴테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고는 "나으리 용서하셔요! 하지만 이건 저의 나라니까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다고 한다. 편집자는 이 소년의 답을 '더없이 이탈리아인 다운, 공손하지만 자부심 가득한 대꾸'라고 묘사했다. 그 답에 괴테가 자신이 불쌍한 북방인이며 그의 눈에 눈물 같은 것이 맺혔다는 것이었다.
무슨 눈물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는 언뜻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이성과 효율로 온몸이 꽁꽁 싸매여져 있고 낭만적이고 여유 있는 이상을 바라지만, 현실은 빡빡한 일상과 엄마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세 아이들, 나의 고질적인 성과 지향적 마인드가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 때문에 그 이탈리아 소년을 보고 안타까운 나 자신에게 눈물이 나온 게 아닐까. 어쩐지 좀 부럽고, 또 혼낸 게 미안하기도 했을 거고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의 서문만을 읽고 나는 그 순간 어떠한 다짐 같은 것을 했다. 더욱더 깊이 이 나라에 빠져보겠다고. 나의 제약 같은 것을 계속 생각하면 그것들이 나를 집어삼킬 테니 최소한 내 정신이라도 자유롭자고, 빗장 같은 거는 치워보자고 다짐을 했다. 이탈리아어를 못해 소극적으로 되는 것도 깨 부수기로 했다. 적어도 나는 영어라도 하지 않는가! 그걸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부딪혀 보는 것이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으면 어떤가? 이럴 때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각별하고 자신이 한국인임에도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해야만 그 나라 사람은 아니라고. 그건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라고 하셨던 <파친코> 이민진 작가님의 인터뷰에서 힘을 얻는다. 심지어 나는 이탈리아인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아기 솔이 보는 게 힘들어 평일엔 집에만 있어서 갈수록 더 움츠리러지는 나의 평일 일상에도 돌을 던지기로 했다. 더 활기차게 살 것이라고 (실제로 이번주부터 변화의 노력을 시작했다).
이번 이탈리아의 4년 체류는 우연이었지만 내 삶에 있어선 필연이라고 본다. 마흔의 나이에 온 이곳에서 모든 촉수를 다 열어서 흡수해 보고 싶다. 부드러운 스펀지같이 쪽쪽 흡수해서 나만의 언어와 생각들, 어떠한 기록들로 남겨두고 싶다. 혹 모르지, '지나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나와 또 누군가가 읽으며 눈물을 흘리며 공감을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