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북클럽 모집 공지를 마치고 너무 지쳐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면서 '엄마는 오늘 저녁은 못하겠어. 외식이다'라고 선포했어요. 남편도 회사 때문에 늦는다고 해서 아이들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호다닥 먹이고 장도 보고 와서 일찍 쉬는 야물딱진 스케줄을 계획했는데, 이제 아이들이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엄마의 계획에 반대를 많이 합니다. 싫다고 하네요. 자기네들은 날씨가 좋아서 산책하다가 걸어서 마트 장을 봐서 집에 와서 먹고 싶대요. 그러면서 자신들이 밥을 한다고 합니다! 콘치즈와 토마토 스파게티 (속으로 아.. 또 내가 다 하겠군. 했지만요). 싫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하고 산책도 하고 장도 보고 갑자기 큰애가 화장실 가고 싶어 해서 젤라또 집에도 들르고... 그렇게 집에 오니 벌써 6시 반이었어요 (언제 하고 언제먹니..ㅠㅠ)
그때 첫째가 토마토소스 유리병이 든 가방을 대리석 바닥에 탁! 내려치는 바람에 병이 와장창 깨져버렸답니다. 한국에서 파는 스파게티 소스 크기 정도가 아니라 대용량이라 흘린 면적이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유리 파편은 여기저기로 날라가고 진한 토마토소스는 저 멀리까지... 나의 정신도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순간 '밥 먹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칭얼거리는 셋째를 안고 있는 그 순간 화가 살짝 치밀어 올랐더랍니다. 그래도 둘이서 교복 안에 있던 런닝샤스만 입고 키친타월을 덕지덕지해가며 치우는 모습에 마음이 좀 짠해져 좋게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괜찮아. 안 다쳤니?'라고 따뜻하게 말하면 다 끝나는 건데 왜 또 그 자리에서 어른 행세를 했는지 지금 조금 찔리긴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얘들아 이런 게 현실이야. 뭔가 기대했던 것대로 잘 안되고 와장창 깨지고 늦어지고... 하기 싫어지고' '원하는 대로 탁탁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 그래서 지금 이런 것도 괜찮아. 안 다쳤으니'
결국 다 치우고 나서 둘째는 콘치즈를 만들기 시작했고 첫째는 급 메뉴를 바꿔서 오일 파스타를 하기로 했어요. 오일 파스타에 넣을 건 마늘밖에 없었지만요. 그렇게 셋이 지지고 볶고 해서 겨우 8시에 먹기 시작했더라죠.
Behind the scene.
누군가를 저를 보고 셋째가 이제 6개월인데 저렇게 많은 일을 하다니... 대단하게 생각한다면 저의 비하인드 신을 보여주고 싶어요. 씻지 못한 얼굴, 매번 잠옷 차림, 마른 채 접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빨랫대에 걸린 옷들. 아기 키우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의 먼지 많은 집 상태... 피곤해서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들. 또 일을 할 때도 '과연 내가 이걸 끝낼 수 있을까?' 그 겁나는 상황부터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순간들. 지웠다 썼다 반복하는 그 비하인드 신은 messy 그 자체입니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면서 일한다는 건 이 messy 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내일부터 좀 쉬기 시작하면 씻고 사람다워 질 꺼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상황이 이런 걸로 스트레스 받는 시점은 지난 것 같아요. 그냥 지금은 신경 쓸 새가 없어서 이런 것뿐. 내일부터 다시 원상태로 돌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같이 하자고 할꺼에요. 주위에 누가 부럽다면, 그들의 비하인드 신도 나만큼이나 어지러울 거예요. 우리 다 비슷하게 사니까요.
아 참. 어제 아이들과 함께 만든 콘치즈와 파스타는 맛있었고 함께 곁들인 샐러드와 포장해 온 조각피자도 맛있었어요. 이래나 저래나 결국 잘 먹었답니다. 구독자님의 이번 주의 비하인드 신은 어떠셨나요? 피드백으로 적어주세요. 이번 한 주 바쁘셨다면 주말에는 우리 좀 더 셀프케어해주는 거예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