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들의 3개월의 길었던 첫 이탈리아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 학교에 가기 시작합니다. 사교육 없는 이탈리아에서 3주간의 썸머스쿨 빼고 세 아이와 삼시세끼 함께한 시간을 이게껏 잘 견디고 새 학년을 맞나 했는데 쌓여왔던 고단함이 결국 참지 못하고 분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요. 화가 나는 것은 기본이고 혼자 우울했다가 슬펐다가 좀 괜찮아졌다가 다시 반복을 했죠.
지친 신체와 불안정한 감정 상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쳐 기본적인 행위들도 (예를 들어 막내의 젖병을 닦는 것) 지나치게 피곤하게 느끼거나, 아니면 또 어느 날은 엄청나게 에너지를 뿜어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하기도 했어요. 또 제가 쓴 글이 왠지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유...체이탈?) 의미 없는 빈 글 같기도 했습니다. 카톡에서 쓰는 간단한 말들도 말이죠. 지금 쓰는 이 글은 제발 그렇지를 않기를. 제정신을 잘 잡으면서 쓰려고 하고 있으나 조금 흐리멍덩해도, 앞뒤가 잘 맞지 않아도 구독자님들께서 이해해 주셔요 ~ 😀
시어머니가 계시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님과 북클럽을 하고 싶었어요. 그것도 3주간 계시다가 밤 비행기로 한국에 가시는 그 날에요! 그런 결정을 했던 건 그동안 어머님이 제 책장에 있는 책들을 4-5권 읽으시면서 저와 그 책들에 대해 캐주얼하게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제가 그게 좋았나 봐요. 아니면 어쩜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요. 제 마음이 동할 수 있는 그런 깊은 이야기랄까요. 어머님은 제 남편의 어머니 이지만, 철없이 어렸던 대학생 때부터 저를 보신 분으로 어쩌면 이 책을 두고 여성 대 여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세 아이 엄마이자 두 달 후에 만으로 마흔이 되는 여자와 60대 후반의 한 여성의 이야기. 저는 용기를 내어 북클럽 아이디어를 전했고 다행히도 어머님께서 승낙하셔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책을 두고 북클럽을 하며 영상으로 그걸 남겼어요.
제가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책을 중간에 두고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북클럽 영상을 찍던 날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살림과 육아에 울고 싶었던 날이었으나 북클럽을 하며 웃다 울기도 했죠. 그런데 영상을 편집하던 기간 중에 또 뜬금없이 남편에게 덜컥 화를 내기도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25분짜리 북클럽 영상에 자막을 달면서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영상 편집을 하는데 2-3일이 걸렸는데 처음엔 '이렇게 영상에 다 말해놓고 또 나는 이러고 있다니...' 쉽사리 바뀌지 않는 저를 비난했어요. 그런데 편집하던 어머님의 대사 중에 '뭐 사람이 그렇게 바뀌겠어?' '이 책을 쓴 작가도 안될걸?' '좋은 내용이니까 좋은 마음으로 나눈 거지' '단 한 번이라도 내 삶을 되돌아보면 그걸로 책의 효과는 된 거 아닐까?' 하시는 대사에 마음에 안정이 왔습니다.
두 자녀를 다 키우고 결혼시키고 다섯 명의 손주에게 할머니가 된 여성은 저에게 무작정 힘내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시간이 더 지나면 더 나아질 거라고'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라고' 이야기하셨지요. 그 부드러움의 예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이라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계속 다시 듣고 자막을 달면서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방식이 너무나 웃음이 나와서 편집하는 저를 웃게 만들기도 했어요. 힘든 상황에서 당장 상대나 나를 바꾸려고 하는 (효과 없는) 노력보다 그 예시가 훨씬 더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이라는 것을요. 딱딱하지 않고 웃음도 피식 나오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희생양이 되었던 남편에게 어젯밤에 영상 편집 후 포스트잇 쪽지를 써서 화장실 세면대 거울에 붙여놓았습니다. 사과 그림과 '내 사과를 받아줘'라는 글과 함께 🍏
그래서 저희 구독자님들께도 그 영상을 함께 나눕니다 (영상 링크). 이 영상을 보고 조금은 부드러워지기를. 부드러움으로 힘듦을 극복하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이 모든 대화가 피어나게 한, <언어의 온도> 의 한 구절도 함께 나눕니다.
"여보게, '부드러움'에는, '강함'에 없는 것이 있다네. 그건 다름 아닌 생명일세. 생명과 가까운 게 부드러움이고 죽음과 가까운 게 딱딱함일세. 살아 있는 것들은 죄다 부드러운 법이지." (p.276,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여름 내내 부단히도 싸웠던 세 모자와 어머님 @Lazise
💬 구독자님의 소중한 답글
지나님, 이번 매거진도 감사합니다. 해리포터 북클럽 참여하고 있는 리즈예요 :)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금요일 아침, 잠깐의 여유로운 커피 타임을 가지며 지나님의 글을 읽었어요~ 지나님 북클럽을 많이 신청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참여하면서 느낀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책을 읽든, 지나님의 질문들을 통해서 '나다운 삶'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매거진에 올려 주신 네 가지 질문들은, 또다시 나답게 사는 법, 더 나아가서 나답게 나의 커리어를 밟아나가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이번 여름을 마무리하며, 질문들 차분히 답을 써내려가봐야 겠습니다! 지금쯤 이탈리아는 밤일까요? 가족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고, 이번 주말도 건강히 지내시길 바랄게요 :) -리즈 드림
지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글 덕분에 매주 위로와 용기를 얻어요! :) 유튜브로는 이태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힐링을 얻구요^^ 때로는 타지에서 힘들고 외롭고 두려운 시간도 있으실 텐데, 씩씩하게 하나씩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늘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정말 위대합니다!! 나다운 삶, 원하는 삶에 매일 한걸음 다가가길 진심으로 응원 드려요~♥ (오자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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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Quote
It's easy to be heavy: Hard to be light.
G.K. Chesterton - English writer & philosopher (1874-1936)
But the fact is, you can't change anyone but yourself. A friend told me that her "marriage mantra" was "I love Leo, just as he is." I love Jamie just as he is. I can't make him do a better job of doing household chores, I can only stop myself from nagging - and that makes me happier. When you give up expecting a spouse to change (within reason), you lessen anger and resentment, and that creates a more loving atmosphere in a marriage. (그러나 사실은 당신은 당신 빼고는 바꿀 수 없다. 내 친구가 그녀의 '결혼생활 주문'에 대해 이야기 해 줬는데 "나는 레오를 사랑해. 그 사람 그대로." 라고 말했다. 나도 제이미를 그대로 사랑한다. 나는 그에게 집안일을 더 잘하라고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오직 잔소리 하는 것을 멈추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당신의 배우자가 바뀌길 바라는 것을 포기하면, 당신은 분노와 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혼 생활에 있어 더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지나의 편한 번역)
The Happiness Project - Gretchen Rubin
👉 책을 많이 읽으니 이곳에서 본 내용이 저곳에서도 있는 것을 찾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된 말은 universal truth 가 아닐까? 사는 나라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지만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거의 다 맞아떨어지는 진실같이.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책에서 부드러움에 대한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바로 변호사 출신의 미국의 백인 상류층 작가 그레첸 루빈의 '해피니스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라이프살롱에서 2021년에 했던 책이다 (살롱 후기). 그 때 체스터턴의 명언을 읽었을 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놀랐었다. 그 책을 읽고 몇년이 지났지만 난 또 별로 변하지 않은가보다. 지금도 똑같이 놀라는 것을 보니.
아래 문장들도 읽어 보면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가보다. 다 아는 논리인데 살다보면 잊는다. 또 어느 순간이 오면 새까맣게 잊고 아이들과 남편을 바꾸려 들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한번 더 되돌아본다면 그 걸로 된거 아닌가. 그저 나는 주기적으로 책을 보면서 리마인드 할 수 밖에 ☺️
모든 것을 이기는 부드러움에 어울리는 영화 하나, 'Mrs. Harris Goes to PARIS' 를 추천해드려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어요. 별 기대없이 봤는데 재밌게 본 영화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드는가 -
🌟 Updates
[BOOKCLUB] 라이프살롱 정규 북클럽 '해리포터 1권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6주코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