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살롱 매거진 58호 👗
5.30. 2024
Vol 58. 새 옷 대신 내 시간을 사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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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탈리아에 산 4개월 동안 지난주와 이번 주만큼 사람들과 많이 부대낀 적이 없었어요. 그 이유는 제가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죠. 지난주 어느 날,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나는 육아와 살림에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어요.
다음날, 남편은 회사 사람들에게 베이비시터, 청소도우미를 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어요. 이탈리아는 상당 부분 '아는 사람'을 통해 일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와 남편은 언어의 장벽도 있었기에 이곳에 사는 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필요한 것을 요구한 이후, 회사의 다른 주재원 와이프 분이 저희 집으로 찾아와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시고 청소도우미도 연결해 주셨어요.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힘듦을 이해하고 또 도움을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육아와 살림이 조금은 덜 버거워지는 걸 느꼈어요. 인정을 바랐을까요... 그래서 살짝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어요. '돈도 많이 들 텐데 청소도우미도 최소한으로 활용하고 그냥 내가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소리치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또 지금 좀 컨디션이 돌아오니까 다시 또 도움을 받지 않는 생각을 한 거예요. '내가 좀 고생하면 되긴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막내가 어린이집을 가는 9월 말까지는 한참 남았고 또 가서 적응 기간도 있어서 10월 중순에나 내 시간이 날 텐데 그 사이에 아이들의 3개월 방학도 있고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9월 말만 바라보고 사는 것도 싫었어요.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저를 갈아 넣기 싫었어요. 남편도 제가 또 멘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돈으로 도움받을 수 있으면 받자고 해서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결정한 것은 다른 지출을 줄이더라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벌 수 있는 돈을 지출하는데 아끼지 말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쇼핑의 천국 이탈리아에 와서 쇼핑만 안 해도 그 돈이면 충분히 도우미 비용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청소도우미는 시간당 12유로로 4시간씩 주 2회 오시게 되었어요. 즉, 회당 가격이 48유로로 요즘 유로가 비싸 한화 75,581원 정도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1달에 60만 원 정도가 청소도우미 비용이 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어요. 다음 주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아리따운 24살의 베이비시터와 인터뷰를 해요. 남편 회사 현지 직원분의 소개를 받았는데 이번 여름방학동안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고 해요 (여긴 젊은 베이비시터들이 많아요. 16살 지원자도 봤네요!) 베이비시터도 3시간 정도 주 2-3회 도움을 받는 걸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신발도 당분간 사지 않아야겠어요.
그래도 시간과 에너지를 돈으로 벌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고 또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복작복작하게 사는 게 어쩌면 집에 주로 머물며 아기 보고 짬짬히 일 만 하는 폐쇄적인 일상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참! 이번 주 토요일엔 이탈리아어 개인 레슨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음에~' '시간 될 때~' 이러다가는 1년이 지나갈 것 같더라고요. 중간에 잠시 쉬더라도 우선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입금 완료! 운동도 좀 하고 제 삶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줄 생각을 하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에요.
최근에 봤던 넷플릭스 영화가 있는데 줄리아 로버츠, 조지 클루니 주연의 'Ticket to Paradise'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이런 말을 해요.
'Why save good stuff for later?'
좋은 걸 왜 나중으로 아껴둬?
당장 조금이라도 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면 pay the price !
망설였던 저에게 해준 말이에요. 구독자님들은 지출에 대한 어떠한 기준이 있나요? 피드백에 함께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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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i가 배경인 영화- 가볍게 보기 좋아요 :) 이탈리아용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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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독자님의 소중한 답글
일상에서의 사소한 도전 - 한번도 운전하고 간 적 없는 새로운 곳으로 운전하고 갈때. 사소하지만 큰도전이에요. 벌벌 떨면서 가고 해냈을때 뿌듯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으로 특히 먼곳. 운전해야야 할 일이 생기면 전날부터 걱정해요.. - 새로운 요리.. 장부터 다시보고 레시피 보고 해야하는 모든 일들이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지만, 성공할 경우 엇 나도 요리좀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 저녁에 술 줄이기, 탄수화물 줄이기.(모두가 공감할거라 생각합니다) - 한번도 안입어본 스타일 옷 입거나 머리 스타일 바꿔보는거. -쉬는날 눕지말구 홈트라도 30분 하기. 그런 사소한 도전들이 쌓여서 예전엔 도전이였지만 지금은 많이 편안해 지거나, 예전만큼 큰 용기가 필요없어진 일들도 있어요. 운전도 아예 무서웠지만 단거리는 쉽게 가요. 또 영어로 전화 메일, 업무 일들… 엄두도 못내었는데 잘하진 못해도 어느새 하고 있는 저를 발견…지금 제가 하는 일상의 도전들도 언젠간 이렇게 내몸의 일부가 될거라 믿고, 믿다보니 천천히 다른 새로운 도전들도 받아들일 용기와 자신감들이 좀 생기는거 같네요.
-윤-
dear. Gina 지나님에게 어떻게 편지를 띄울 수 있을까 하다가 ㅋㅋ 매거진 피드백에 살짝 남겨봅니다. 덕분에 저는 Young ladies 님들과의 너무나도 찬연한 살롱의 멤버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오늘의 제가 되었네요. 늘 무한하고도 무해한 ㅋㅋ 감사를 지나님께. 2년 터울 아들셋을 키우며 엄마의 도움을 받은건 약 4년가량 되는 거 같아요. 그 이후로는 오로지 저와 남편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또 6년 연하랑 결혼을 했지 뭐예요; 철모르는 아버지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달리는 남자였고, 아빠의 몫까지 내가 챙기리라 다짐하며, 낮에는 수업하고 오후 쯤 아이들을 하원차량으로 사무실에서 받아 세아들과 귀가해서 저녁밥을 하면 남편은 와서 쏠랑 밥먹고 다음날 회의준비 혹은 설명회준비로 또 일을 하고, 저는 밤 열시쯤 아이들을 재워놓고 다시 사무실을 나가서 커피를 볶고 새벽 세시쯤 다시 들어와 겨우 잠을 청했다가 또다시 일곱시 기상의 루틴을 반복하다가 사무실에서 일하던 도중 꽈당하고 쓰러진 적이 있어요. 수면부족에 과로 및 스트레스가 주요원인 이었는데, 갑자가 류마티스 검사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누워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온 몸에 바늘이 꽂혀있는 듯 몸이 아파왔어요. 그때 얼마나 서러웠나 몰라요. 억울하고.. 나는 그저 가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왜 또 나만 아프지..하면서. 병원에서의 처방은 청담동 며느님처럼 맛사지 받고, 좋은거 보면서 느리게 사세요 였어요 ㅋㅋㅋ 웃기죠. 그렇지만, 어린 세아들과 젊은 남편을 뫼시고 사는 저는 또 다시 나를 지리멸렬한 일상의 루틴으로 넣어두고 잠시 저를 슈퍼우먼이라 가스라이팅 했던 시절이 있어요. 서른살 후반에 그 치열함은 사십대 초반에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남편의 배려로 한달동안을 미국 네도시로 여행을 떠났었어요. 커피의 도시들요. 포틀랜드, 시애틀, 샌프란, 뉴욕. 그때 제가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는 단렌즈 쏘니와 아이폰 이었는데 부르클린에서 맨하탄으로 넘어도는 다리위에서 아무리 자유의 여신상을 찍으려고 해도 안되더라구요. 도저히.. 잘 찍어서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가 업는 거예요. 담을 수 없는 현실을 직면한 첫번째 순간 이었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것과 하고 싶은것.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는데, 그냥 프랑스의 누군가의 집 같은데 전시가 되어 있더라구요. 당시 화풍이나 문화나 패브릭을 보여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누군가의 방 이었어요. 그때 전 두번째 직면을 하게되었어요. 내 삶의 역사. 잘 지켜진 개인의 흔적이 역사가 되어 전시가 될 수 도 있구나 하는. 한국에 돌아 온 저는 제 삶을 겨우 돌보려는 시도를 했던 듯 해요. 겨우 그제서야..ㅋ 저는 올해 마흔 여덟이예요. 개정된 나이로 ㅋㅋ 어제 정말로 너무나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시간을 함께 하며, 제가 딱 미국을 다녀 온 그 시절의 저를 만날 수 있었어요. 나를 유용함의 세계로만 밀어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 시절의 저를요.. 그래서 더 살롱의 그녀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나 봐요. 부러웠어요. 질투가 날만큼. 저는 지금 제 존재만으로도의 유용함이 이세상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에, i am good enough 하므로 너무나도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동선에서의 소폭으로 제 삶을 영위하면서도 말이죠. 지나님의 일상을, 그리고 때로는 번뇌의 순간들을 글로 받아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유툽으로 보고 인스타로 만날때는 너무 매력이 넘쳐서 얼마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몰라요. 응원합니다. 지나님.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지나님으로 덕분에 정말정말로 세상은 조금더 아름다워 질껍니다. 우리의 무용함은 이미 예술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사랑과 존경을 담아 사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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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몰 살롱. 기쁨의 조각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
So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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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첫 스몰 살롱은 낭독덕후인 제가 '내 목소리로 낭독하기’로 문을 열었습니다. 낭독에 빠진 건 사실 라이프살롱 북클럽에서 가진 낭독 시간 덕분이었는데 라이프살롱에서 낭독을 알려드린다니, 그것도 원데이클래스로! 알려드리고 싶은 게 많으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알려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으로 수업자료를 만들었다가 엎기를 반복했어요.
나는 무엇을 알려 드리고 싶을까. 낭독에 푹 빠지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저의 낭독 동기이자 낭독 강사인 분에게 고민을 말했더니, 낭독에 아주 푹 빠지게 하려면 누구보다 재밌게 낭독할 수 있는 책 한 권이면 끝난다며 킬러 같은 미소를 보여주는 거예요. 맞아요. 낭독에 빠지는 방법은 사실 낭독을 해보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어요? 🤷♀️
그래서 낭독회를 열었습니다.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당일 낭독회를 열었는데요. 말 그대로 당일에 대본을 받아 당일에 낭독하는, 어쩔 수 없이 실수연발하는 그런 낭독회.
킬러 책으로는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에 수록된 첫 글을 준비했습니다. 손 큰애가 빚을 지며 시작하는 에피소드인데요. 혼자 읽으면서 라이프살롱 친구들이 떠올랐던 에피소드여서 꼭 함께 낭독해 보고 싶었어요.
두 팀을 나눠 서로 낭독회의 관객이 되어 주었습니다. 즉석 캐스팅이 진행되고 배우들의 대본 리딩 현장처럼 진지했죠. 누군가에게는 지나온 시간이었을 테고 저에게는 동경한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우리는 낭독회라기보다 마치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손큰 애, 키 큰 애, 이슬아 작가 3인방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각자의 호흡과 정서를 가지고 낭독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새롭고 재밌는지, 내 목소리란 높기만 하거나 아니면 너무 낮거나,절대 염소 소리가 아니란 걸 알려드리고 싶었는데요. 그 상황에 푹 빠지면 여러 톤의 목소리도 표현할 수 있고 더 이상 소극적인 내가 아니라는 걸 이미 한 번의 낭독회로 경험하신 것 같았어요.
당일낭독회의 녹음파일에 샴페인 따르는 소리, 책상치는 소리, 까치소리, 관객의 웃음소리, 그리고 북촌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낭독회가 끝났지만 한 분이 물으셨어요. "손큰 애 빚은 어째 잘 갚았으려나요?"
재작년 운영진으로 참여한 라이프살롱 연말 비커밍 나이트가 끝나고 느꼈던 것처럼, 하려고 하는 일이 중요할수록 힘을 빼야 한다는 걸 스몰 살롱을 통해서 또 한 번 느낍니다. 모두가 함께 만드는 곳이 바로 라이프 살롱이지요. 정말 중요한 순간은 혼자 만드는 법이 없는 것 같아요. 소중한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끝으로 낭독했던 산문집 <끝내주는 인생>의 아름다운 문장을 매거진 구독자분들께 전하며 인사드릴게요.
오랜 스승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렇게 끝나는 편지였다.
"슬아, 생이란 아흔아홉 겹 꿈의 한 꿈이니 부디 그 꿈에서 무심히 찬연하기를 "
부디 찬연하기를, (숨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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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 작가 이훤의 사진 작품이 책의 이야기를 열어주는데요. 그중 표지 사진,<손에 쥔 시절과 날아가는 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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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Quote
Summer residents didn't have to pay anything, were given the full run of the house, and could basically do anything they pleased, provided they spent an hour or so a day helping my father with his correspondence and assorted paperworks (p.4, Call Me By Your Name)
섬머 레지던트들은 돈을 하나도 내지 않아도 됬다. 집 전체를 쓸 수 있었고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아무것이나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1시간 정도만 아버지에게 온 연락에 회신을 하거나 서류 작업에 도움을 제공했다 (지나의 편안한 해석)
참으로 여유로운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학자들에게 책을 내기 전 원고를 고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그들의 방법이라 했는데 그냥 이 뜻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에 빌라를 오래 소유하고 있고 과수원도 갖고 있으니 돈이 있는 학자 집안인건 맞는데 이들이 generous 한 것중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의 공간에 대한 여유로움이다. 내 여름 별장을 함께 내어 준다? 뒤에 읽다보면 관광객같은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식사 대접을 했다고 했다. 섬머 게스트들과 쇼파에 앉아 다 같이 TV를 보기도 했다. 내 공간, 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도 여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존경스러웠다. 나도 살짝 그런 삶을 꿈꾸기도 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더 오픈된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좀 놀랄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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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na's Italy Life
essay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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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not welcomed
오늘은 이탈리아 에세이를 스킵하고 싶을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지만 짧게라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환대라는 것이 얼마나 햇살 같은 것인지. 그리고 환대받지 못한, 환영받지 못하는 경험은 얼마나 끔찍한 기분인지.
모두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그들은 영어를 잘 못했고 나는 이탈리아어를 잘 못한다. 첫째 아이의 summer show에 아기가 들어올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제 둘째의 summer show에 내가 유모차를 가지고 가서 그 유모차가 복도를 막게 되면 아이들이 지나가며 넘어질 수 있다는 제지를 받았기에 내가 유모차 대신 아기띠를 한다고 했지 않는가? 그러나 학교측은 다시 전화가 와서 아기가 들어올 수 없다며 'safety issue'라고 했다. 나는 'what safety issue?' 라고 물었는데 행정 직원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나는 화가 났다. 이것이 나한테만 하는 차별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들은 다수이고 나는 소수일 경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든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갑자기 파이터 정신이 들면서 조목조목 따질 이야기를 읊조리며 솔이를 아기띠에 하고 학교로 걸어갔다. 학교에 가니 그 다수의 이탈리아인들 (선생님들, 교장선생님)이 내가 아기띠를 하고 걸어오는 모습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금은 불편한 표정들이 보였다. 아마도 행정직원이 내가 전화를 받고 기분이 나빠했다는 말을 전한것 같았다. 나는 혼자였다.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저쪽 대장인 교장선생님을 바라보고 'I heard baby is not allowed to get inside the auditorium. May I ask you why?' 교장선생님도 영어가 수월하시지 않아 나에게 안에가 너무 시끄러워서 아기에게 맞는 행사가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그분도 영어를 더 잘했다면 답을 이렇게 짧고 직설적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 행사는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큰 스피커를 틀고 조명이 번쩍 거리는 Summer show는 어린 아기를 들여보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이해할 수 있겠지?' 라고 진작에 전화로 이야기 해 줬다면 나는 화가 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인원이 참여하는 행사에 앰뷸런스가 상시 대기 해야 하는 등의 조건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운동회 때도 앰뷸런스가 밖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를 생각한다면 아기를 들여보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들이 조금만 더 영어로 미리 잘 설명했다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았을 텐데, 내가 이탈리아어를 잘했다면 부드러운 대화로 이어갔을 텐데 했다. 결국 나는 남편이 퇴근후 학교로 올 때까지 강당 밖에서 대기했고 남편이 오자마자 솔이를 데리고 먼저 집으로 갔다. 혼자서 첫째의 공연을 보는데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솔이가 옆에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그랬다.
이번 경험으로 느낀 것은, 언어가 모국어가 아닐수록 더 부드럽게 말하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상대가 소수라면 (아니 누구에게든), 조금은 따뜻한 말로 건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학경험으로 나는 소수에 대한, 변두리에 있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한국에 살면서 많이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나를 위해 아기를 들여보낼 수 있도록 규율을 바꿔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상대가 소수라면 조금은 설명을 잘 해주고 그들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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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된 노래와 팝송을 안무와 함께 열심히 하는 첫째의 모습을 보고 뭉클하기만 했어야 했는데... (5.30.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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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CLUB] 6월 북클럽 'Call Me by Your Name (a.k.a 콜바넴)' 모집이 시작되었습니다. 6월 10일부터 7월 6일까지 읽는 4주 코스 입니다. 모집글 확인
- [SMALL SALON] 소피님의 '내 목소리로 낭독하기' 스몰살롱이 지난주 화요일에 열렸습니다. 인스타그램 후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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