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제 유튜브 영상을 캡처해서 솔이가 너무 귀엽다고 보내주었어요. 제가 일할 때 옆에 조용히 엎드려 저를 쳐다보는 그림 같은 장면이었지요. 그 영상은 지난주에 올린 최근 영상이지만 찍은 건 1달 전일 거예요. 지금 그녀는 절대 그렇게 가만히 있지 못해요. 7개월의 아기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원해요. 가만히 안겨있는 것보다 놀아달라고 해요. 소근육도 충분히 발달해서 뭔가를 잡으면 놓지 않으려 하고요. 아마 그때 그 장면을 지금 다시 재현하면 아마 제 노트북을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아당기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 자세로 가만히 있지도 못할 거예요.
그렇게 아기가 활동적이 되면서 개인적인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낮에 1시간~ 최대 1시간 반 정도가 되었어요. 뭘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매일이 고비였지만 지금이 또 고비 같아요. 결국 이렇게 되면 내 라이프 사이클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스케줄은 아기가 8-9시에 잘 때 같이 잠들어 새벽 5시 전후에 일어나서 시간을 쓰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적어도 2시간의 시간이 생기고 오후에 아기 낮잠 자는 시간까지 합하면 3시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지요. 오늘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8-9시에 자면 큰 아이들의 숙제를 도울 수가 없어요. 훌쩍 커진 아이들은 이제 10시가 넘어야 자는데 엄마가 숙제를 도와주기는커녕 잘 자라는 말도 못 해주는 거죠. 그림책을 읽어주겠다는 제 위시리스트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밤 시간에 특별하게 뭘 같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과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없어집니다. 또한 저녁 식사시간이 늦은 이탈리아에서 9시에 자려면... 거의 잠옷을 입고 저녁을 먹어야 할 판입니다. 먹자마자 양치하고 잠들기! 🤪 이런 이유 말고도 과거에 5시 기상을 꽤 길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을 더 많이 했던 것 외에는 전반적인 만족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아마도 저희 집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저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곳에서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냥... 반(semi) 안식년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1-2시간만 일하자. 미 타임은 10-15분 정도여도 괜찮다. 기대치를 확 내려놓기로요. 막내가 돌이 되는 9월 말에는 어린이집에 가니까 적응 기간 후 10월 말 정도부터는 4-5시간의 시간이 날 테니 그때까지는 나에게 일을 많이 안 할 권리를 주기로 했어요. 저에겐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기에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다들 너무 잘하고 열심히 하는 요즘 세상에서 혼자 뒤로 가는 느낌이 들 때마다 긍정 회로를 또 열심히 돌려줘야 하고요. 당장 내 눈앞의 못하는 일에 포커스 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보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일을 많이 못 하는 것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의 경험이 되도록 제 생각과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려고 해요. 어쩌면 저출산 문제도 무작정 애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여성이 (또는 여성이 일해야 할 경우 아기 아빠가)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그 일의 공백 시간을 자신의 삶에 유리하게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서 그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뒷받침을 해줘야 할 것이고요. 저출산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이렇게 한다고 아기를 낳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육아를 손실의 마인드셋에 연결시키지 않도록 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내 가족과 나의 행복을 위해 자의적으로 하는 저의 반 안식년.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
💬 구독자님의 소중한 답글
끝내야만 하는 일, 이라고 지나님의 생각을 따라 적으며 쉼표로 끝맺음을 했어요. 때로는 끝내다가 말고 쉼표를, 슬쩍 찍어놓고 마쳐보는 일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ㅋ ssamo-사선희 입니다.
🇮🇹 Gina's Italy Life
essay #12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도 괜찮아
요즘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옛날 생각 중에서도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 학교에서 나는 정말 외톨이였다. 나를 누가 외톨이로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자진해서 만든 그런 외톨이였다. 아마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 완벽주의, 두려움 등의 믹스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조용하고 소극적인 이미지가 굳혀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어떤 일이 생겨 (예를 들어 수업을 하는 교실에 쥐가 들어온다든지 해서) 내가 소리를 아아아악 지르며 책상에 올라가 호들갑을 떨어 내 이미지를 탈피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존재감 없이 살던 학생이 그렇게 호들갑을 한 번 떤 걸로 이미지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이런 외부적인 이벤트에 기대하던 나이였던 것 같다. 이 생각이 지금까지 나는 게 신기하다. 거의 30년 전 이야기가 아닌가.
그때 학교에서 나는 없는 존재 같았다. 사실 그냥 내가 없는 것 같이 하루가 지나가길 바랬다. 점심시간에도 조용히 혼자 앉아 그냥 이 시간이 가기를 바랬다. 가끔 그나마 조금은 편한 친구가 있어서 같이 앉아 있으면 마음이 좀 나았지만... 영어시간에 조별 수업을 할 때 이미 그룹이 다 만들어져 낄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 짧은 시간에도 이 시간이 그냥 빨리 지나가기를 바랬다. 빨리 금요일이 와서 내가 이 백인 학교에 오기까지 다녔던 학교에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집에 가서 나의 한국인 하우스메이트과 놀면서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반적인 삶을 즐기고 싶었다.
나름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여기 이탈리아에 와서 내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나라 언어를 못하고 내가 소수민족이 되면 특별한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소극적으로 변한다. 내가 미국에서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됨을 느낀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문제나 심적 부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내가 급한 가구를 사는 것을 하루 이틀 미루는 것도 사실은 이거였고 또 아이들의 학교 엄마들의 왓츠앱(Whatsapp) 메신저에서도 느꼈다. 오늘은 이 메신저에서의 나의 태도에 대해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