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네요. 연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살고 계세요?' 라는 질문에 저는 '유한함에 대해 생각해요.' 라는 재미없는 답을 내놓습니다.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능력, 결국 내가 가진 에너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데 그 생각을 시작하는 지점은 언제나 한계에 다다랐을 때 같아요. 때론 남이 건드려 놓을 때도 있고요. 스스로 느낄 때도 많죠.
아이 챙기는 게 힘든 날에 저는, 아이가 내 옆에 확실히 있을 거라 예상되는 연도를 써보고 하나씩 세어봐요.몇 년 안 되어 내 품을 떠난다는 생각에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사람이 힘든 날. 내 몸 하나가 힘든 날
현재 할 수 있는 것과 이 노력이 가능한 최종 기한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러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끄적거리며 앉아 있으면, 노트를 덮을 때쯤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내가 가진 유한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단어로 써보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들이 눈에 보여요. 네, 별거 없더라고요. 대신 내가 느끼는 감정도 별거 없고 말이에요.
아이가 아프면 또 어떤가요. 밤새 열이 오르는 아이 옆에 도둑잠을 자며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가진 한계를 그 어느 때보다 잘 알게 되어요. 좀 키웠구나 하면 아픈, 우리 아이의 자는 모습에서 내가 가진 작은 우주가 눈에 보이죠. 어디까지고 가있는 내 무한한 생각들이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옵니다.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건 삶의 터진 여기저기를 메우는 것이지 그렇게 삐까뻔쩍 멋지거나 우아한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뭔가를 배울 때도 내 체력으로는 무리야, 그만큼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 이렇게 리밋을 그어버리는 생각들도 나이가 되니 이해가 되어요. 제가 요즘 그렇거든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재미없는 생각들이죠. 하지만 그게 나라고 규정하지는 않으려고요. 현실적이 되어갈 때는 에너지가 좀 달리는구나, 또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질 때는 내가 에너지가 있는 날이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에너지가 있을 때 주저 말고 여행 계획도 세우고, 많은 생각들을 기록해 두는 거예요. (그래서 젊을 때 다 도전해 보라고 하나 봅니다. 비관하다가도 다음날 다시 에너지가 샘솟는 시절이니까요.)
라이프살롱 에디터 브라마솔레님은 모임에 다녀오면 다음 날 하루는 집에서 푹 쉬어야 회복이 된다고 하던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몇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오면 힘든지 저도 체크해 봤거든요? 이동시간 포함해서 4시간이 제겐 적정시간이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한번은 금요일 밤에 동네 엄마들과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거의 4시에 귀가를 했답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다음날이라며 훈계했던 저는 남편에게 한소리 들었고요. 당연히 다음날도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남편 눈치 팍팍 받는 주말을 보냈습니다. 다시는 이러면 안 되겠다 다짐했지만, 한번씩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네요. 맥주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동네 호프집을 점령했던 새벽이라니.
내가 가진 에너지는 리밋이 있지만 리밋을 넘어봐야 또 리밋을 아는 것 아니냐며 위험한 외출을 권해봅니다. 저는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과 체력적, 환경적 한계 사이에서, 제가 가진 것들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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